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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탐독/ 모과

by 북댄스 2024.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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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라는 이름은 나무에 달린 참외라는 뜻의 목과가 변한 것이다.
잘 익은 열매는 크기, 모양과 색깔까지 참외를 쏙 빼닮았기 때문이다.

첫서리를 맞고 잎이 떨어져버린 나뭇가지에 매달린 노란 모과열매는 또 다른 의미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배고플 때라면 더욱 한입 베어 먹고 싶을 만큼 먹음직해서다.
혹시라도 모양새에 반하여 한 번이라도 깨물어본 사람들은 시큼털털한 그 맛에 삼키지도 못하고 오만상을 찌푸려야 했을 것이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우리 속담이 모과 맛처럼 딱 들어맞을 때도 없다.
맛없다고 탓하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이고 모과 자신은 다른 데 승부처를 둔 탓에 느긋하다.
먹음직한 열매를 매다는 것에는 다 계산이 있다.
사과, 배, 목숭아는 맛있는 과육 안에 단단한 씨를 품고서 동물들에게 제발 나 좀 잡아먹으라고 유혹한다.
물론 씨앗은 소화시키지 않는다는 전제다. 더 많이 더 멀리 후손을 퍼뜨려보겠다는 깊은 뜻이 깔려 있다.

그러나 모과는 한 단계 높은 전략을 구사한다. 우선 배고픔을 금세 해소해줄 것 같은 커다란 열매에다 은은한 향을 넣어두었다.
먹음직스러움과 향에 홀린 동물든은 나무에 달린 열매를 맛보려 할 것이다. 이것만으로는 전략이 성공할 수 없다. 그래서 모과는 열매가 쉽게 떨어지게 만들어두었다.
한마디로 열매를 따서 멀리 가져가 맛을 보라는 주문이다. 맛보면 틀림없이 그 자리에 버리고 가리라 예상한 것이다. 그나마 성깔 있는 녀석은 재수 없다고 발로 멀리 차버릴 것이니, 그래 주면 더더욱 좋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모과의 두꺼운 육질은 완전히 썩어버린다. 속에 들어 있던 씨앗들은 엄마가 챙겨준 풍부한 영양분에다 광물질까지 필수 영양소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힘차게 시작한다.

가을이 짙어가면 모과는 모양새만이 아니라 향으로 우리를 매료한다. 대체로 서리가 내리고 푸른 잎이 가지에서 떨어져나갈 즈음의 모과가 향이 가장 좋다.
완전히 노랗게 익지 않은 연초록빛일 때 따면 두고두고 향을 음미할 수 있다. 자동차 안이나 거실에 두세 개쯤만 두어도 문을 열 때마다 조금씩 퍼져 나오는 향이 매력 포인트다. 모과는 커다란 서재가 없더라도 책과 함께하는 공간이라면 다른 어느 곳보다 잘 어울린다. 은은하고 그윽한 향은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책자을 넘겨볼 여유를 주고 심신을 편안히 해주기 때문이다. 모과 향은 적당히 강하고 적당히 달콤하며 때로는 상큼하기까지 하다. 사실 우리는 향수라는 인공 향에 너무 익숙하여 모과 향의 은근한 매력을 잘 알지 못한다. 가을이 가기 전에 모과를 코끝에 살짝 대고 향을 맡을 수 있는 작은 여유라도 가졌으면 좋겠다.

모과는 향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친근한 존재다.
사포닌, 비타민C, 사과산, 구연산 등이 풍부하여 약제로 쓰이고 모과차나 모과주로도 애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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